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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독서, 소설 <순례주택> 영혼을 살찌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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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듯이 꼭 다른 책이 또 눈에 띈다.

도서관에서 책을 꺼내 잠깐 읽어보면 모든 책이 다 재밌는 것 같아서 꼭 대출을 해오는 편이다.

그래서 빌려온 책이 <순례주택>이라는 소설책이다.

 

난 학창시절 국어와 음악을 가장 좋아했다.

원래는 국어선생님이 될까 생각했었지만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것인지 

지금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여전히 문학을 좋아하고 가끔 글쓰기 대회에 글을 출품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소설분야에 관심이 많다.

소설을 잘 쓰려면 작가의 경험도 풍부해야 하지만 다른 작가의 글을 많이 읽어보고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목이 <순례주택>? 순례하는 주택인가?

독자의 호기심을 끄는 좋은 제목이다.

책을 조금 읽어보니 순례하는 주택이 아니라 주인공인 집 주인의 이름이 '순례'라서 그렇게 지은 것이었다.

 

 

 

책의 처음은 '순례 주택 주소는 거북로 12길 19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거북동이라니? 신선했다.

작가가 가상의 지역을 만든 것이다.

 

집 주인인 순례 씨는 싼 임대료로 방을 빌려주고 와이파이, 옥탑방, 옥상정원까지 공유할 수 있게 하는 날개 없는 천사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미용실 원장인 조은영 씨에게도 보증금 없이 월세만 받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고

조 원장은 순례주택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순례 씨는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살자'라는 모토로 세신사를 하며 한 평생 성실히 살아 왔고,

그렇게 해서 순례주택을 살 수 있었다.

 

주인공인 오수림은 엄마, 아빠, 언니와 따로 떨어져 순례 씨 밑에서 컸다.

엄마가 언니를 가졌을 때 입덧이 심했고 임신, 산후, 육아 우울증으로,

실수로 생긴 오수림과 언니를 동시에 키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수림은 엄마, 아빠, 언니가 사는 원더 그랜디움 동네를 '1군'이라 칭했고

본인은 1군들 사이에 어색하게 낀, 2군 후보 선수쯤 된다고 했다.

 

순례주택이 있는 거북마을이 빌라촌인 데 반해,

1군들이 사는 원더그랜디움은 산세권, 역세권, 팍세권, 학세권을 모두 갖춘,

소위 말해서 잘 사는 동네이다.

오수림의 아빠는 대학 시간 강사인데, 15년째 전임교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1군들은 본인들이 넉넉한 형편에서 시작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원더 그랜디움'이라는 동네에서 산다는 이유로 빌라촌인 거북마을을 업신 여긴다.

자신의 딸을 키워준 순례 씨에게 감사할 줄도 모른다.

오수림의 엄마는 뉴스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해서 빌라촌 애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됩니다.'라고 말하는 대형사고를 치기까지 했다.

엄마의 별명이 '솔직히 아줌마'라고 붙을 정도로 말이다.

1군들이 영원히 원더 그랜디움에 살며 거북마을에 발도 들여놓지 않을 것처럼 굴었지만,

오수림의 외할아버지가 태양광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원더 그랜디움이 경매로 넘어갔고,

그 집에서 쫓겨나 거북마을로 들어오게 된다.

버팀목이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군들의 자금줄이 끊겼다.

돌반지를 팔아서 생활비로 써야 할 정도로 1군들의 생활은 힘들어졌다.

순례 씨는 오갈 데 없는 1군들을 순례주택에서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 원으로 살게 해준다.

순례 씨는 자신을 업신 여기는 1군들에게 오히려 내줄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천사이다.

오수림은 1군들이 자신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ㅡ소설 내용의 문구를 따서 이야기 하자면 버린 것도 아니지만 버리지 않은 것도 아닌ㅡ생활형편이 어려워진 1군들을 위해 열여섯의 나이에 분식집에서 알바를 해가면서 생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군들은 누가 누가 더 어린가 내기하는 것처럼 싸가지가 없고 기본 개념이 없다.

순례 씨가 갖고 있는 주택이 17억 원쯤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순례 씨가 사망하면 혹시나 최측근인 오수림이 상속받을 수 있지 않나 계산기나 두드리고 있고

어려운 형편에 양복, 교복치마를 세탁소에 외상으로 맡기고 있다.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닌 듯 하다.

열여섯인데도 주인공 오수림처럼 선한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십에 가까운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빌라촌을 업신여기고 자신들에게 선의를 베푼 사람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우리 시대의, 생물학적 신체나이만 어른이지 속은 어린 아이와 다름 없는 개념 없는 우리 시애듸 사람들을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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